목포남부교회

오늘 본지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났습니다. ‘배석판사 부모가 부장판사에게 “우리 아이 잘 좀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으로 2000년대 학번들 판검사에 따른 법원과 검찰의 새 풍속도를 다룬 것이지요. 그중 흥미를 끄는 대목은 배석판사 부모가 부장판사를 찾아와 학교 선생님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전문직으로 성장한 다 큰 자녀가 뭐 그리 걱정됐기에 부모가 따라와서 인사까지 했을까요. 그 장면을 떠올려보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1980년대에 태어나고 2000년 이후에 대학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최근 판검사로 임용되면서 법원과 검찰에 새로운 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기사에서는 소개하더군요. 이들은 고시 공부도 고학하거나 절이나 고시원에서 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학원에서 입시 공부하듯 준비한 경우가 많고 서울 강남권에서 자란 외국어고 출신이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사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11/2011041100058.html )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많습니다. 교육섹션 기자이기에 학생들을 만난 일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이 따라오시는 경우가 많지요. 미성년자이기에 그러려니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간혹 지나칠 때가 잦습니다. (대학생, 대학원생인데 부모가 따라오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무슨 질문 하나를 던지면 당사자인 학생이 아닌 부모가 일일이 답하기도 하고, 학생이 답할 때면 부모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학생의 자율권 따윈 없어 보이는 부모와 자녀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럴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이번에 명문대 신입생이 된 학생 인터뷰를 했더랬지요. 수능 점수 얘기가 나와서 정확한 성적을 물었는데 당사자인 학생은 기억을 전혀 못하더군요. 그러자 스무살 청년인 그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해결사인 엄마는 정확히 점수를 알려주더라고요(모든 과목 점수를 외우고 계시는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말씀하시더군요). 그 후에도 “엄마, 기자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는데 이렇게 답해도 돼?”, “엄마, 이거 맞아?”라며 30분간의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더군요. 그때마다 해결사인 엄마는 아주 친절히 답을 해주더군요. 주의사항까지 알려주는지 제가 앞에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통화를 길게 했습니다. 그 짧은 통화시간 동안 “우리 아들”이란 말만 10번 넘게 하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습니다.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을 만나보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뭐 하나 물어보면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보고요.”를 달고 사는 학생도 많다는군요. 부모가 전화해서 사소한 것까지도 자초지종을 묻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부모를 대상으로 상담하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경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눈치를 본다는 얘기를 합니다. 학원 수강이며 과외가 학생의 선택이 아닌 학부모의 입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부모 눈에 밉보이면 짤릴 수 있기에 부모한테 잘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유치원생과 초등생에 한정된 얘기가 아닙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런 일들이 소위 모범생, 그것도 우등생일 경우 더 만연하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 공부하는 학생일수록 이런 상황이 일어날 위험이 더 크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이 회자 됐습니다. 미국에서 생긴 용어인데 국내에도 들어와 통용됐지요.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간섭하고, 지시하고 자녀가 무언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기도 전에 미리 채워주는 부모를 뜻합니다. 그 이후에 찍찍이 부모, 캥거루 부모 등등 관련 파생 단어들이 쏟아졌지요. 지금은 이런 단어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너무 만연한 것 같습니다. 더는 화제가 안될 만큼 흔해졌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헬리콥터 부모가 생긴 이유를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이 높아졌다는 점과 한 자녀로 인한 과보호로 꼽는다면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만연할 것이라 우려됩니다. 학생의 스케줄을 꿰뚫는 것은 기본이고 생각까지 지배하려는 부모들이 많아진 생각을 하니 섬뜩해졌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흔히 겪는 문제로 쉽게 포기한다는 점을 꼽습니다. 살면서 큰 좌절감이나 상실감을 맛본 적이 없기에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면 그것을 이기지 못해 쉽게 포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무기력증과 조급증을 보이기도 하고요.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답니다. 부모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녀를 대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인이 된 자녀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일들을 직면했을 때, 부모가 평생 함께해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대리인 역할을 해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실패할까 봐 전전긍긍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까요.

소아정신과 전문의 노경선 박사가 쓴 자녀교육서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란 책을 보면 자녀를 잘 키운다는 의미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자신이 원하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좋은 부모란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이지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부모님, 혹시 자녀가 성장할 기회를 뽑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일입니다.